몽클레르 루피니 회장의 '리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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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 루피니 회장의 '리부팅'

sejongland 0 2,503 2020.02.17 00:52

몽클레르 루피니 회장의 '리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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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 패션 브랜드에는 현금이 들어오지 않았고, 생산 라인은 멈췄다. 이른바 총체적 난국. 당장 내일 망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회사가 너무 부실하다 보니 내다 팔 수도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영진은 급기야 외부에서 데려온 디자인 총괄 책임자(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회사를 아예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예상 외로, 그는 흔쾌히 이 골칫덩이를 떠맡기로 했다. 2003년 당시 인수가는 3500만유로(약 440억원). 같은 해 잉글랜드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기록한 이적료(3500만유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디자이너의 손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자연스레 무너질 것이라고 여겨졌던 이 회사는 10여년 만에 연 매출 6억9400만유로(약 7800억원)를 올리는 거대 패션 기업으로 다시 일어섰다.

 

'명품 패딩'의 선구자 격인 브랜드 '몽클레르(Moncler)'를 이끄는 레모 루피니(Remo Ruffini·54·사진)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한때 밀라노 파니나리(Paninari)의 상징이었던 브랜드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니나리는 1970~ 1980년대 밀라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스타일로, 우리 식으로 하면 압구정 오렌지족쯤 된다.

 

"14살 때 어머니를 졸라서 당시 35만리라(지금은 쓰이지 않는 이탈리아 화폐. 과거 환율로 추정해보면 약 23만원) 정도 하던 몽클레르 재킷을 샀죠. 몽클레르는 오토바이 '베스파' 선글라스 '레이밴'과 함께 시대를 상징하는 3대 아이템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믿고 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몽클레르는 1952년 알프스 산맥 기슭인 그르노블에서 태어난 브랜드다. 원래는 등산가들을 위해 침낭을 만들어 팔던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였다. 1954년 거위털이 들어간 방한복을 내놨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거위털 재킷이었다. 보온성이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이 지역을 찾던 스키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68년에는 프랑스 스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제작했고, 이 후광을 등에 업고 1970년대 유럽에서 스포츠 브랜드로 높은 위상을 누렸다.

 

그러나 유행은 찰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어른들이나 입는 낡은 브랜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젊은이들은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다른 스포츠 브랜드에 빠져들었다. 브랜드는 천천히 인기를 잃고 졸아들었다. 루피니 회장이 몽클레르에 영입된 건 이미 이 브랜드가 파산을 코 앞에 둔 1999년의 일이었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루피니 회장을 만나 망가진 브랜드를 부활시킨 비법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후, 만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루피니 회장은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이 잘 어울리는 중년 신사였다. 하늘색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위에 감색 더블 재킷을 걸쳐 입었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먼 데서 오느라 수고했다"며 악수를 건넸다. 유독 큰 손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몽클레르의 역사처럼 그의 삶에도 우여곡절이 깊어 보였다.

 

루피니 회장은 몽클레르를 인수하고 나서 "안 했던 일이 하나도 없을 만큼 모든 일에 혼신을 쏟았다"고 말했다.

 

"당시 저희가 만들던 거위털 재킷은 한 벌에 1㎏ 정도로, 매일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습니다. 일반인들도 입게 하려면, 경량화는 필수적이었죠. 옷 마감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뛰어난 디자이너를 영입해 디자인도 바꾸고, 광고도 찍었습니다."

 

―몽클레르가 부활할 수 있었던 핵심 전략은 무엇이었습니까?

 

"저희 목표는 세계 최고의 거위털 재킷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브랜드가 되고자 한 게 아니었죠. 제품군을 늘리는 대신 '한 가지만 제대로 하자'고 정했습니다. 요즘 들어 몇 가지 다른 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패딩 재킷이 저희 매출의 85%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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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클레르의 스테디셀러 재킷인 마야(왼쪽)와 브레발


몽클레르의 스테디셀러 재킷인 마야(왼쪽)와 브레발 몽클레르 제공거위털 재킷에 집중한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자본을 집중해 효율적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고, 세일즈 방법도 단순해집니다. '심플'의 미학이 발동하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모든 제품이 뛰어나다'라는 인지도를 갖추는 게 쉬울까요, 아니면 '딴 건 몰라도 재킷 하나는 확실하다'라는 인지도를 갖추는 게 쉬울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인지도는 새 시장에 진출할 때 더 확실한 시장 위치를 선점하게끔 해 줍니다.

 

예컨대 백화점에 가보면 겨울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오리털 혹은 거위털 재킷이 전시돼 있습니다. 소비자는 피곤함을 느낍니다. 뻔하디뻔한 재킷 말고 특별한 것을 찾습니다. 저희가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패딩 재킷은 몽클레르가 유명하다'라는 브랜드 정체성과 인지도가 시장에 효과적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의 기대치에 맞는 품질이 나왔고요. 이런 상황에서 가격이 비싼 건 별 문제가 아니었죠."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의 송지혜 파트너는 "브랜드도 사람의 인생처럼 성장하고 전성기를 누리다 쇠퇴하는데, 이 순리를 거스르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며 "몽클레르는 쓰러져가는 브랜드를 마치 컴퓨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켠 것처럼 '재부팅(rebooting)'하는 데 성공한 사례"라고 말했다.

원래 패딩 재킷은 등산할 때 입는 옷이었다. 따뜻하긴 하지만 무겁고 둔해 보여서 비즈니스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루피니 회장은 등산가, 스키 선수의 전유물이던 패딩 재킷을 일반인들이 코트 대신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무게를 줄이고 디자인 차별화에 힘썼다.

 

“꼼 데 가르송을 론칭한 와타나베 준야, 발렌시아가의 천재 디자이너 니콜라 게스키에르 등을 영입했는데, 그들이 ‘명품 패딩’을 만들자고 제안해왔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패딩이 명품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패딩 재킷은 겨울철 가장 활용도가 높은 옷인데도 이상하게 확장성이 거의 없는 옷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모직 코트는 군복에서 출발해 정장과 캐주얼을 가리지 않고 활용됩니다. 그런데 패딩 재킷은 산에 갈때 아니면 좀처럼 입지 않았어요. 정장과 함께 입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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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 브루스 웨버가 촬영한 ‘몽클레르를 입은 강아지’ ... 강아지들도 따뜻한 옷을 알아본다.

 

사진가 브루스 웨버가 촬영한 ‘몽클레르를 입은 강아지’. /몽클레르 제공 디자인과 품질만 받쳐준다면 안 될 게 없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내지 못했을 뿐이었어요. 저희는 정장 디자인을 도입해 패딩 재킷을 만들었습니다. 지퍼 대신 단추를 달았고, 라펠(재킷의 접은 옷깃)도 세웠죠. 결과물은 근사했습니다. 까다로운 명품 소비자들도 인정할 만큼요.”

 

몽클레르 재킷은 싼 것도 한 벌에 100만원 내외, 비싼 건 수백만원까지 하지만 재고가 없어 못 팔 만큼 불티나게 팔린다. 몽클레르의 성공 이후 많은 브랜드가 고급 명품 패딩 재킷을 쏟아냈다. ‘명품 패딩’이라는 새 시장이 창출된 것이다.

 

전통은 지키되 디테일은 다르게

 

루피니 회장은 “몽클레르는 단순히 제품뿐 아니라 매장, 스타일, 쇼핑 경험, 캠페인, 광고 등 제품 이외의 분야에서도 ‘차별화’를 추구했다”며 “그래서 몽클레르는 경쟁 브랜드가 없다”고 주장했다.

 

“소비자가 ‘패딩 재킷’을 원한다면 몽클레르 말고도 여러 브랜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몽클레르 재킷’을 원한다면 그 어떤 브랜드도 대체재가 될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소비자가 몽클레르를 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를 위해 브랜딩에 힘썼습니다.

 

몽클레르는 등산복 브랜드로 태어났습니다. 세계 최초의 거위털 재킷을 만들어 낸 브랜드고요. 이런 역사와 전통은 저희만이 가진 독창적인 DNA입니다. 이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고품질화, 매장 분위기와 서비스 개선에 힘썼습니다.”

 

―어떻게 DNA를 지켰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는 거위털 재킷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철에는 덜 팔립니다. 2분기(4~6월) 매출은 1년 매출의 10% 수준에 불과하죠. 그러나 2분기에 실적을 높이고자 거위털 재킷 대신 티셔츠와 반바지 위주로 생산한다면 실적이야 오르겠지만 DNA가 망가져 버립니다. 그건 몽클레르가 아니죠.(물론 몽클레르에도 티셔츠와 반바지가 없지는 않지만 생산량과 종류가 많지 않다.) 매장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저희 제품의 90%는 옷걸이에 걸려 있습니다. 접어서 전시하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저희는 재킷 브랜드니까요. 재킷은 거는 옷입니다.

 

같은 이유로 저희는 현재 전 세계 150여개 매장을 전부 직영으로 운영합니다. 물론 프랜차이즈 매장을 세우거나, 로컬 업체에 라이선스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장 수를 늘리는 데는 좋지만 브랜드 가치를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각 사업자가 돈을 벌기 위해 매출만 생각할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전략을 도입할 테고요. 그러면 브랜드는 모두 망가집니다.”

 

―반면 화보나 사진을 찍을 때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명 패션 사진작가인 브루스 웨버에게 의뢰해 저희 화보 촬영을 했습니다. 그가 대단한 이유는 화보 사진을 찍을 때 패션이 아닌 예술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에게 패딩 재킷이 아니라 ‘몽클레르’를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한 번에 알아차리고는 ‘강아지에게 몽클레르를 입히자’고 제안했습니다. 패딩 재킷을 입은 강아지들은 금세 화제가 됐고, 저희는 패션쇼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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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클레어 제품

1 2015년 가을·겨울 감므블루 컬렉션.

2 몽클레르의 여성복 최상위 라인인 감므루즈 컬렉션 중 하나.

 

―몽클레르가 진짜 명품으로 인정받은 것은 유명 디자이너 ‘톰 브라운’과의 협업을 통해 최고급 레이블인 ‘감므 블루’ 시리즈를 론칭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약간 도박이었습니다. 9년 전의 톰 브라운은 지금처럼 특급 디자이너가 아니라 ‘좋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톰 브라운의 뉴욕 패션쇼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마치 스포츠 게임을 보는 것과 같이 역동적이었습니다. 브랜드로서의 톰 브라운은 럭비나 조정과 같은 스포츠 게임에 전통을 두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옷을 만듭니다. 마치 저희가 스키나 등산에서 영감을 받듯 말입니다. 저는 그때 이 둘을 섞으면 분명히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톰 브라운과 몽클레르는 ‘동류(同流)’였거든요.”

 

―회장님께 ‘명품’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25년 전 어머니가 에르메스 지갑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지갑은 여전히 주머니 안에 들어 있어요. 찢어지거나 형태가 틀어지지도 않고 그대로요. 제게 명품이란 이렇게 ‘지속하는 것’입니다. 지속성은 단순히 내구성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스타일도 질리지 않아야 해요. 그러므로 ‘유행하는 패션’은 절대로 럭셔리가 될 수 없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맞춰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들은 쉽게 질립니다.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스타일이 구식이면 그 내구성은 옷장 안에서만 빛을 발하겠죠.

 

저희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현대성(contemporary)’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10년 뒤에도 입었을 때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옷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몽클레르의 롤모델은 ‘애플’입니다.”

사모펀드의 출구 전략이 싫었다

 

몽클레르는 2013년 기업공개(IPO)를 선언했다. 당시 공모가는 10.2유로였는데 현재는 15유로 선까지 올랐다. 루피니 회장이 전체 지분의 32%를 보유하고 있다.

 

―왜 상장을 하셨습니까? 보통 패션 브랜드는 정체성 보호를 위해 기업공개를 꺼리지 않나요?

 

“2003년 회사를 맡은 이래 늘 2~3개의 사모펀드와 함께 일했습니다. 보통 패션 브랜드는 이렇게 운영하죠. 그런데 사모펀드는 어느 정도 지나면 출구 전략을 펴야 합니다. 팔고 나가야 하죠. 2008년에는 칼라일, 2011년에는 유라제오와 일했는데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파트너가 오고 가는 건 영 부담스러운 일이죠. 대안은 주식시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주식시장이 늘 옳다는 건 아닙니다. 주주들은 회사를 단지 매출, 수익 등 숫자로만 판단하죠. 변동성도 심하고요. 대신 제가 최선을 다하고, 금융 위기가 터지지 않는 한 회사 전체가 흔들릴 일은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2011년 상장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 금융 상황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리스는 거의 파산 상태였고, 스페인도 심각한 상태였죠. 은행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2년 뒤 시장이 나아졌다는 판단이 섰고, 그때 공개한 겁니다.”

 

―사모펀드보다 주주들의 압박이 더 강할 때도 있지 않나요?

 

“몇몇 주주들은 여름철에 티셔츠를 더 생산하길 원하죠. 물론 티셔츠를 만들고, 몽클레르 로고 넣으면 10만장씩 술술 팔릴 겁니다. 그러나 이건 저희 브랜드의 DNA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경영진이 주주들 눈치를 보면 기업 전략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성공, 빠지면 실패. 성공 가능성은 50%라는 얘깁니다. 저희는 장기적으로 오랜 기간 지속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 전략이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럼 (몽클레르)주식을 사지 마세요.’”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0/20150710017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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